(2006년 6월 14일 수요일)
비가 언제부터 이렇게 많이 내렸을까. 아. 벌써 여름이구나. 그러면서 바지를 걷어붙이고 스테플러로 네방씩 쿡쿡 찝어서 슬리퍼를 신고 조리를 하나 사야겠다고 생각했다. 우산은 시립미술관에서 주워온 정품인지 가짜인지 알수없는 테디베어 우산인데, 난 이제까지 내가 사용했던 어떤 우산보다 길게 잘 사용하고 있는것 같다. 위에 단추가 있든말든 비는 새지 않는것 같다. 있는사람은 있는대로 살고 없는 사람은 없는대로 살지만, 비오는날에 우산이 없는 사람은 택시를 타거나 우산을 산다. 이년전에는 비를 피하려다가 욕을 먹었었다. 해군이 물을 무서워 해서야 쓰겠냐면서, 모든 비를 대 놓고 맞았던 기억이 있다. 그렇게 생각하면 마음이 편했다. 발목까지 물이차도 아직은 수영을 할수 없을만한 깊이라 생각하며 세상을 싱거워 했다. 그래서 학교에 수영장이 생겼을때부터 매일매일 거르지 않고 수영장에 가서 쏘가리처럼 혼자 허리에 힘을 주고 왔다갔다 했던것 같다. 수영장에 멋진 인연은 커녕, 친근한 물고기 한마리 조차 없었다. 수영장에 다니는 사람들은 왜 알을 낳지 않는걸까. 누군가의 알 같은게 수영장 물에 떠 있으면 난 그것을 해치지 않으려고 애썼던것 같다. 오늘은 이번달 수영의 마지막날, 삼만 오천원의 끝자락이었다. 난 삼만 오천원치의 수영을 했던가. 생각해보면, 내가 스물 몇년을 살아온 그 값을 아직도 못해서 뭔가 자꾸 분발하려고 하는것 같은데. 그 값이라는것은 누가 매기는 걸까? 지금까지 수백만원을 의미없이 썼다고 하는 기준은 어디에 있는걸까? 결국 수백만원 치의 경험이란 수백만원을 썼으면 당연히 생기는것이 아닌가. 난 수백만원을 쓰면서 수천만원치를 아까워 했으니 본전을 뽑았던 것일까. 아쉬워 하면 남는것인가 손해보는것인가. 시간을 항상 아까워 하면서 돈을 그만큼 썼던것은 현명했던 생각인가 되돌아볼 시간도 아깝다. 시간이 아까워 틈틈이 수영을 했는데, 발전이 있나없나 새우도 고래도 다 접영을 하는 이판국에, 나만의 주특기는 접영인가 평형인가, 뭘로 말해야 좋을까, 입을 다물면 무시한다고 눈을 부라리고 의미없는 말을 펼쳐 놓아도 작품이라고 구경하는 사람도 있고, 열심히 한것에 침만 뱉고 사라지는 사람도 있고, 그런 생각들로 물속을 헤엄치니 왜 수영장에 천장이 막혀서 빗물이 수영장에 받아지지 않는걸까 생각을 해봤는데. 모기를 막기위해 천장을 덮어놨구나 라고 생각을 하니 간단했다. 그러다가 수영장이 문 닫는데. 이렇게 바깥의 박자에 발걸음을 붙이니 즉흥 환상곡 같기도 하고, 컨베이어벨트의 기계음 같기도 하다. 그런데. 그런데. 그런데. 내 샴푸가 없어졌다. 샴푸가 없어졌지만, '일본에서 사온 무지 폼클렌징이 없어지지는 않아서 다행이야' 라고 생각하면서 가격은 샴푸가 더 비싼데 라고 생각하다가도, '값이란 누가 매기는것일까' 하고 떠나간 샴푸를 얕잡아 생각했다. 비누로 머리를 벅벅 감으면서 샴푸가 되돌아 온것같은 착각을 일으킬만큼 좋은 비누를 수영장에서 썼던가? 왜 샴푸만 없어졌을까? 요즘에 '은전한닢' 처럼 '샴푸한통'을 진정으로 마음속 깊이 원했던 사람이 있었단가. 그런 사람이 가져 갔으면 좋겠다. 내 샴푸를 빗물에 타서 건물들의 머리를 감기고, 세상을 트리트먼트한다면, 염색도, 파마도 걱정없이 할수 있겠지. 잘 헹구고, 잘 말리고, 바가지를 긁지 말아요. 내일아침은 도시의 하늘을 가득 덮은 대기오염의 비듬이 없을테지요. 나의 샴푸가 많은것을 바꿀수 있기를 바라며, 샴푸를 잃어버리기를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수영을 마치고 다시 돌아와서 바지의 스테플러를 떼내고 바지와 남방을 펴서 말리면서. 수분은 왜 다시 증발되는걸까. 밤이 지나면 아침이 오는 이 원리를 알수없어도 받아들여야 하지만. 오늘도 받아들이기 싫다. 비가 계속 내린다고 해도, 예술관 4층까지 빗물이 차오르지는 못한다. 세상에 걱정할것이 또 얼마나 남았는가. 걱정들을 가방속에서 꺼내어 창밖으로 던져낸다. 많은것들을 잃고, 많은것들을 얻고, 왔다갔다 정신없고, 그 어느때 보다 소중했던 몇달이었다. 한 학기가 끝나간다. 공부를 얼마나 잘했건, 못했건 간에 샤워를 하고 난 뒤의 이 개운함이 좋다. 얼마나 많은 사람이 빗물에 젖어 세상을 원망하고 있을까. 맥주병속의 물고기 처럼 가망이 없다고 해도 누군가는 그놈을 부러워 할것이다.부러워할 시간도 원망할 시간도 없다. 샴푸가 혹시나 돌아온다고 해도 받아들이지 않겠다 생각한다. 세상이 온통 샴푸 향이 나기를 기대하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