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봄
ewa marine에서 DSLR용으로 나온 하우징 케이스를 구입
그리고
2007년 11월. 제주도 중문 해녀의 집 앞 리프 포인트에서 서핑 사진을 찍던 도중 하우징에 이상이 생겨 카메라에 바닷물이 가득 찼습니다. 완전한 고장으로 오랫동안 여러 곳에서 많은 사람과 10만장의 인연을 맺었던 카메라가 영영 못쓰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사실상의 제 밥줄도 끊겼습니다. 저는 사진을 찍는 아르바이트를 그만두어야 했고 제주도에서 부산으로 돌아 와야만 했습니다. 물질 의존적이기는 합니다만 카메라는 저의 모든 것이었습니다. 갑작 스러운 결락감은 어떤 슬픔보다 더 무겁습니다.
이 글은 2007년 가을 포토유니티 닷컴에 게시되었던 원문입니다
서핑을 하다보면 가끔 맛보는 정직하고 예쁘게 오는 파도를 만날때가 있는데, 그럴땐 실력이 늘 것만 같은 기분을 느낀다. 하지만 꼭 그럴때면 사진이 생각 난다. 내가 봤던 그런 풍경을 찍지 못하는 것이 너무나 아까워서 정직하고 예쁘게 오는 파도를 등지고 해변가로 걸어나와 나는 카메라가 있던 자리에 서핑보드를 놔두고 오리발도 없이 큰 파도를 향해 수영해서 파도 속으로 들어간다. 서핑 사진 찍는 것은 어렵다. 물속에서 다가오는 파도를 피해 사진기를 들고 있는것조차 어려운데, 마음껏 실력 발휘를 할 수 없는것은 당연한 말씀. 초점을 맞추기 조차 어렵고 최첨단 기능을 갖춘 카메라는 반은 물에 잠기고 반은 하늘을 바라보고있는 렌즈를 통해 들어오는 빛을 알맞게 담아내기위해 빛을 계산 하느라 항상 버벅댄다. 서핑과 사진을 동시에 행했던 어느순간인가 부터 내겐 사진이라는 것이 더 큰 목표가 되어 항상 중요한 순간에는 카메라를 들었던 것 같다. 거친 파도속에 서핑보드 대신 카메라가 더 안전해서도 아니었고 더 편했기 때문도 아니었다. 뚜렷한 성공이나 명예를 위해서도 아니었다. '그냥 어느쪽이 더 후회할것 같은가?' 잠시만 고민을 하면 바로 카메라가 손에 잡혀 있었다고 할까. 그렇게 해서 마약같이 잡은 물속에서의 카메라에는 항상 후회가 없었다. 하지만 그중에서 좋은 사진은 정말로 찾기가 힘들었다. 찍어준 사람에게 미안한 마음이 더 많이 들정도로. 그러면서도 마음속에 새싹같은 희망. 절대로 사진은 찍은 횟수를 배반하지 않는다는. 동화같은 교훈을 되내이며 매순간 카메라와 바닷속에 들어갔다.
매순간이 고비지만 그때마다 나는 사진을 찍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나는 또 중문 해녀의집 앞 리프포인트에 서핑보드를 놓고
카메라를 들고 또한번 파도속으로 향했다.
바닷물이 이미 가득찬 상황에서 카메라가 찍은 이상없는 마지막 사진
들어가면서 미끄러운 리프에 몇번이나 미끄러져 넘어졌다
우여곡절끝에 라인업 위치 근처까지 갔는데 카메라 속 파인더의 색이 갈색이었다. 뭔가 이상이 생겼다는 것을 알아차리고 이것저것 테스트 하는데 그 이유를 알 수 없었다. 그러다가 카메라를 높이 들어올린순간. 내 눈을 의심했다. 카메라 하우징 속에 가득 바닷물이 담겨있는 것이 아닌가. 바다 한복판에서 다가오는 파도를 피해 몇번이나 내 카메라를 확인했지만 역시나 바닷물로 가득 차 있었다. 파도속에서 뭍으로 다시 나가는 것또한 파도속에 들어오는것 만큼이나 힘든 문제.
그리고 카메라는 그때의 내 기분을 본적없는 풍경으로 세장 묘사했다 1/3
그리고 카메라는 그때의 내 기분을 본적없는 풍경으로 세장 묘사했다 2/3
그리고 카메라는 그때의 내 기분을 본적없는 풍경으로 세장 묘사했다 3/3
그뒤로는 한동안 이성을 잃었던것 같다. 소리를 지르면서 리프쪽으로 걸어나오는데 미끄러워 자꾸 넘어졌다. 넘어지고 일어나서 다시 걸으려다 미끄러지고 이곳 저곳을 다쳤다. 괴성을 지르면서 리프를 짚으며 한참을 기어서 나왔다. 이미 하우징 속에는 바닷물이 한가득. 하우징은 엄청나게 무거웠다. 하우징속의 바닷물 색깔은 먹기 싫은 오래된 녹차 색이었다. 한쪽팔에는 하우징을 끼우고 한쪽팔에는 보드를 들고 미끄러운 리프를 걷다가 또 몇번이나 넘어졌다. 바위에 턱을 부딪히고 팔꿈치를 몇번이나 찍었다. 내가 봤던 어떤 영화의 장면보다도 잔혹한 장면이었다. 바닷가앞 샤워대에서 카메라를 몇번이나 씻고 하우징속에 물을 가득담아 카메라를 담아 두었다. 음. 이게 그토록 내가 아끼던 카메라였단 말인가. 물속에 있는 카메라가 불쌍하다고 생각하기 전에 얌전 하다고 생각했다. 그동안 별별곳에 다 다니면서 혹사시키면서도 한마디 불평도 하지 않은 카메라. 그때의 풍경은 처량하다기 보다는 소소했다. (그때의 장면을 담은 사진이 없어서 아쉽다-다른카메라로 사진을 찍을만한 이성이 없었다) 바람은 찼고 마음은 차분했다.(실감이 나지 않았다) 집에와서 몇번이나 샤워기 노즐을 잡고 오랫동안 찬물에 내 카메라를 씻겼다. 카메라 샤워 사진은 종훈이가 찍어주었다
액정속에 물이 찼는데 카메라를 돌릴때마다 물이 왔다갔다 했다
2주일을 말리고 난 후에는 액정속에 소금이 꽉 차 있었다.
렌즈도, 바디도 정품이 아니라 기대 안하고 A/S센터에 전화해 봤지만
정품이라도 바닷물에 빠진 카메라는 들고 올 필요가 없다고 했다
바다는 정말로 대단한 존재다.
그 당시 현존하는 니콘 광각렌즈중 가장 비쌌던 AF-s 17-35mm F2.8 ED 렌즈 ㅠ_ㅠ
렌즈가 훨씬 무거워 졌다. 뒤집어서 드니 물이 주르르 흘렀다
물이 반정도는 빠지고 반정도는 고였다. 왜 나머지는 안빠지는 걸까?
사람들이 묻는다. 기계식 으로 나마 쓸 수 있지 않느냐고
그래서 시험해 봤는데 줌링과 조리개 링이 움직이지 않는다
답은 이 비싼 렌즈는 이제 기계식으로도 쓸 수 없다.
세로그립을 분해해서 안쪽 접지점에 대고 물을 뿌렸다
어디 한구석에도 물을 뿌리지 않은 곳이 없었지만 물기를 닦고 말리자 말자 여기저기서 녹색 녹이 피어올랐다.
서핑은 내게있어 대단한 존재다
서핑은 휴학하고 있는 나를 제주도로 데려갔으며, 낯선땅 제주도에서 집을 구해서 살도록 만들고, 내 인대를 끊고 두달동안 나를 병원에 있게 만들고, 내게있어 다른 가치들을 내밀고 서핑용품을 사게 만들고, 내가 가장 아끼는 내 전재산 카메라에 방수케이스를 씌워 같이 바다에 들어가도록 만들었다. 그리고 서핑은 오토바이를 개조하게 만들고, 밤잠을 설치고 매일매일 새벽에도 수트를 입은채 오토바이를 타게도 만들었다. 부모님이 보시면 혀를 끌끌 찰 만큼 내 인생을 물들였다. 지금 몇백만원치의 카메라를 잃은 시점에서 다시 생각해보니, 정말로 대단한 존재다. 내가 왜 이렇게 되었는지는 곰곰히 다시 생각 해 보아야겠다.
덩달아. 산지 한달도 채 되지않는 핸드폰 액정도 깜빡거리며 고장났다
하지만 이따위의 문제들이 내 인생을 망칠수 있을까?
망칠수 없을걸
나는 더 열심히 살고 더 열심히 살아서 더 많은 사진을 찍는 사람이 되겠습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그 뒤
독일어로 편지도 써봤지만 ㅜㅜ
그래도 서핑 사진을 계속 찍고 싶어서
하우징 관련 정보를 찾아 설계도도 만들어 보았지만
생각만큼 쉽게 완벽한 방수가 되기는 힘들다고 결론 내리고,
새 하우징 장비를 구입해서 조심조심 잘 사용하고 있었으나
이번 양양 행사에서 사람들이 내 카메라를 들었다 놨다 했기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장비에 물이 새기 시작했다.
몇몇 외국인은 가져간다는 말도 없이 카메라를 쥐어보고 찍어보고 자신들끼리 장난을 쳐서 불쾌했다.
하우징 케이스가 장착된 카메라는 어떤 사람에게는 놀이용 장난감이 아닌 작업 장비임을 알아 주시기를 바라며
남의 카메라를 쉽게 다루지 말아 주시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