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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ary

이태원 주민일기 출판 기념회를 다녀와서

낯선 이태원. 

_엄마는 서울 사람이지만 아빠는 부산 사람이라, 부산에서 자란 내게는 서울이란 겨울에 눈이 쌓여있는 신기한 동네였다. 그래서 여름보다는 겨울에 서울에 놀러오는 것이 좋았다. 지금에야 부산이나 서울이나 크게 다르게 느껴지는 것이 없지만, 서울을 가기전엔 요즘 외국으로 나갈때의 설레임 같은 것을 느꼈다. 고등학교 1학년 시절, 겨울 방학에 외할머니 집에 머무르면서 누군가의 동행없이 홀로 서울 탐방을 처음 했던 시기에, 제일 처음 갔던 동네가 명동, 그리고 그다음이 이태원이었다. 아마 서울역 근처에 있는 '이름을 들어본 동네' 여서 가보기로 결심을 했으리라. 서울 지리에 익숙치 않은 나는 지하철 노선도 모양대로 서울이 생겨있는 줄 알았다. 그래서 무작정 걷기 시작했는데 도로 표지판을 보고 효창공원, 삼각지, 남영역을 돌아 숙대입구, 삼각지를 거쳐 이태원에 도착했다. 7시간 동안을 헤맸고 신발 위에는 얼음이 얼어 있었다. 이태원을 발견했을때는 어떠한 희열도 느끼지 못했다. 7시간동안 걷기만 했으므로 배가고파 계란빵을 사먹었던 기억 이후에는 이태원 역을 발견하고 지하철에 몸을 싣고 집으로 돌아 왔던 기억이 부끄럽지만 내게는 이태원에 대한 첫 경험이다. 

_그 뒤로도 후로 몇번이나 이태원을 찾아 가 보았지만, 정을 붙일만한 요소가 눈에 잘 띄지 않았다. 이태원엔 주로 밤에 갔었는데, 갈때마다 음식점에서 주인 아주머니와 싸우는, 다른 손님들과 싸우는 미군을 보았고, 미군 헌병들은 조를 이루어 동네를 순찰하고 그들을 체포해 갔다. 그럴때면 가급적 나는 환하게 밝은 골목을 따라 미군들의 눈을 마주치지 않고 걸었다. 언제나 이태원에 가면 대한민국 국민으로써 남의 동네에 잘못 찾아온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내가 갈만한 곳이 아닌 것 같아 왠지 꺼림칙 했고 이태원에 다녀오면 한동안은 이태원에 가지 않았다. 용산 미군기지가 이전하기 전의 이태원 뭐랄까. 말로 표현 못할 희안한 느낌이었다. 

_돈을 많이 번 것은 아닌데도, 맛집에 대해 관심을 가지면서 이태원에 맛집이라는 곳들을 찾아서 다니기 시작했다. 외국인이 많은 동네의 특성 탓인지 이태원에서 맛본 음식들은 항상 새롭고, 재미있었다.하지만 이상하게도 새롭고 특이한 음식은 자주 생각이 나지 않았고, 누군가 불러주지 않는 한 이태원에 들러 길을 거닌다던지, 약속을 애써 이태원에서 잡지는 않았다. 나는 이제 왠만한 서울의 구석구석은 서울사람 못지않게 잘 알고 있지만 이태원에 관해서라면 아직도 초보다. 그리고 지금도 애써 찾아가지는 않는걸 보면 나는 이 동네를 아직도 어려워 하고 있는 것 같다. 

_'이태원 주민 일기' 출판 기념회에 갔다. 목정량과 사이이다 누나의 초대로 갔다. 아마도 누군가 초대해 주지 않았다면, 과거를 미루어 보건데 제 발로 이태원에 찾아가지는 않았을 것이다. 용산 구청 소극장? 부끄럽게도 나는 오늘 구청에 소극장 있다는 사실을 처음 알았다. 지도를 찾아보니 '용산 문화예술회관' 으로 이름 붙여진 그 곳은 용산과는 거리가 먼 녹사평역 근처에 있었다. 녹사평 역에 내려 중고등학교 시절 일일찻집 가는 느낌으로 지하철 역에서 부터 행사장 까지 일정한 간격을 두고 길바닥에 놓인 '이태원 주민일기 출판 기념회' 표식을 보고 따라 걸었다. 찾기가 그다지 어렵지는 않았는데 '구청 소극장' 이라는 다소 애매한 공간을 찾아가는데에 좋은 지표가 되었다. 

_뭔가 으리으리한 건물 앞을 끝으로 표식은 더이상 없고, 안쪽 한켠에는 사람들이 북적였다. 구청 소극장이라고 해서 사람이 별로 없는 허름한 구석에다 의자 몇개 가져다 놓고 하는 행사인 줄 알았는데, 이건 뭐, 과장 좋아하는 사람들 말로 수식하면 '대극장' 규모였다. 2백석은 넘을 것 같은 극장식 의자와 극장보다 높은 천장고, 화려한 조명과 수많은 고정식 캠코더들, 정장을 입은 경호원들이 곳곳에 서있는 그곳의 느낌은 전혀 이태원 스럽지 않아서 이태원 스럽다고 할 수 있는 희안한 느낌과도 비슷했다. 

                                   (사이이다 누나는 관객 앞에서 모두의 단체사진을 찍었다) 

_구청장님의 축사 이후로 '이태원 주민일기'에 참여한 작가들이 나와서 한명 한명 나와서 3분 스피치를 했다. 요즘은 많은 매체들이 TED에 관해서 다루며 사람들의 관심도 커져가고 있다. '널리 퍼질만한 아이디어'를 모토로 하는 TED행사들은 정말 멋있다고 생각한다. 내가 TEDx관련 행사에서 내가 강연을 하기 전부터도 TED는 관심있게 지켜보는 멋진 행사였다. 그 중에서도 취업을 앞둔 젊은이들에게 유행하고 있는 것은 TEDx 강연인데,  TEDx는 TED에서 라이센스를 받은 단체가 독립적으로 개최하는 행사를 말한다. TEDx행사들이 TED와 같다면 좋으려만, 우리나라에서 열리는 많은 TEDx행사를 보면 TED에서 기준으로 삼는 자기고백 보다는 잘난 연사가 나와 자기포장, 자신의 성공을 합리화 하는 것이 대부분 이다 보니. 그들이 자신의 성공을 얼마나 자랑스러워 하는지는 잘 알 수 있었지만, TED 동영상들로 부터 받은 가슴 뭉클함은 찾기 힘이 들었다. 그 반면, 이태원 주민일기의 3분 스피치는, 성공에 다가가기 위해 쓰는 치트키 처럼 생겨나는 많은 TEDx 행사와는 다르게, 이태원과 관련된 즐거운 경험들, 이태원에서 얻은 경험들로 변화된 자신에 관련된 이야기들로 구성 되어 있었다. 스폰서로 이태원의 이미지 쇄신을 위해 이태원에 있는 제일기획이 투입된 것도 아니고 땅값을 높여 보자며 주민들이 담합을 해서 나온 책도 아니다. 주민 스스로가 모여 공간을 바탕으로 시너지를 내고 그 과정 자체를 기록 하는 것, 그것에 관해 이야기 하는 자리는 누가 처음으로 생각해서 만든 것일까?  내가 사는 공간이 아니었기에 부럽고도 대견했다. 

_저 푸른 초원위에, 그림같은 집을 짓고, 사랑하는 우리님과 라는 가사에서 볼 수 있듯이, 인류의 역사 이래로 좋은 공간에서 좋은 사람과 함께 살고 싶은 것은 모두의 꿈이 아닐까? 이웃 사촌 운운하며 동방 예의지국이라 했거늘 강을 기준으로 강남과 강북이 서로 헐뜯고 같은 강남 땅에서 강남사람을 욕한다. 왜들 그러는지 알수는 없지만 욕 먹기 싫어 저 멀찌감치서 다들 웅크리고 있는 모습이 보인다. 그런 서울에서 내게는 동네 친구가 없다. 사람들이 다 나보고 별나다고 하는데, 별나서 동네친구가 없는건지, 동네친구가 없어서 별난건지는 잘 모르겠다. 하지만 나도 동네친구가 있었으면 좋겠다. 하지만 그 친구들이랑 모여서 무엇을 할것인가 생각해 보아도 번뜩이는 무엇인가가 없다. 언젠가 부터 사람들과 어울리는 것이 어렵다. 연예인 이름도 외우지 못한다고 구박을 받을때면 나는, 내가 처한 이 환경에서 가급적 먼 곳으로 어서 떠나고 싶다. 적당히 성공을 거둔 사람들은 아무도 살지않는 동네에 집을 올려 동네를 만들고 친한 친구들과 함께 뭔가 새로운 것을 해보고 싶다. 라고들 얘기하며 다들 동남아시아를 비롯한 적당한 곳에 땅을 사고 친구들과의 노후를 생각한다. 뭐 그들의 인생의 계획을 욕할수는 없지만, 적당히 먹고, 적당히 놀고, 적당히 마무리 하기에는 아쉽지만 뭐 어쩔 수 없으므로, 라는 식으로 일생을 마감하고 싶지는 않다. 다음번에 살 곳은 어느 동네가 좋을까? 홍대앞? 한남동? 평창동? 생각은 많지만 엄두가 안난다. 

_이태원에 살고싶다고 생각한 적은 없었다. 하지만 오늘의 시간 이후로 고민해 볼 만한 동네가 되었다. 그들이 한 프로젝트들도 흥미로웠지만 가장 감명받은 부분은, 자신의 주거 지역 자체를 사랑하는 마음 그 자체였다. 그들의 초점은 우리동네의 땅값을 위해서도, 우리들의 명예를 드높이기 위해서도 아니었다. 내 방을 예쁘게 꾸미고, 내 방에 사람들을 초대하는 것과 같은 바램은 누구나 가지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왜 집밖에 나가면  집밖에 나가면 담배꽁초나 쓰레기를 버리면서도 길에 떨어진 담배꽁초나 쓰레기를 줍는 것 조차 자신의 일이라고 생각지 않는지. 어서 좋은 동네로 가고싶다고 생각하지만 정작 좋은동네로 가면 누릴 것만 생각하며, 기여할 것은 생각하지 않는 많은 사람들 속에서  동네에서 재미있는 일들을 벌이고 기록하는 사람들이 있는 한, 이태원은 살 만한 동네, 가보고 싶은 동네로 남을 것이다. 내가 좋아하는 말이 있다. Think globally, Act locally. 내게있어 그들은 자신들이 처한 환경에 대한 불만 보다는 행동으로 이태원이라는 애매한 동네를 살아 볼만한 동네로 변화시켰다. 대단하다는 말 밖에는 할 수 없을 것 같다. 


_예술이 무엇인지는 잘 모르겠다. 한때 나는 아티스트를 꿈꾸기도 애써 감추려 하기도 했다. 아직까지도 그 경계나 설명은 어렵고 모호하며, 남의 작업에 대해 섣불리 예술로 인정하는 것도, 예술이 아니다고 생각한다고 말하기도 모두 어렵다. 그래도 관심은 끊이지 않기에, 앞으로도 가급적 예술이라는 얘기를 하지 않으면서 예술과 관련을 맺고 살아가고 싶다. 살아 가면서 다른 예술가를 만나는 것은 기분좋지만, 예술가라고 부르기는 어려운 느낌이다. 그들이 예술가가 아니라서가 아니라 내가 그들에게 예술가라고 부르는 것이 일종의 실례나 아부, 혹은 무관심과 비야냥으로 느껴질까 두려워서다. 그런 그들을 오늘은 예술가라고 부를 수 있을 것 같다. 왜냐하면 좀 더 훌륭한 예술 활동을 하기 위해서 훌륭한 동네, 알맞은 조건을 를 만들어 나가는 것이 아니라, 좀 더 이상적인 동네를 위해서 예술적인 활동을 했기 때문에, 정당한 수단도 목적이 없이도, 세상을 아름답게 바꾸고자 했다는 것이.그 불명확 하고도 뚜렷한 그들의 의지와 행동을 표현하는데에 예술이라는 단어가 오늘은 조금 적합해 보인다. 앞으로도 예술가 로써의 그들의 다음 행보가 기대 된다.